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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사례

요건은 인정되었습니다

2026년 9월 4일 황윤상 행정사

재심 신체검사를 나흘 앞둔 목요일 밤이었다. 나는 상이등급 구분표를 네 번째로 읽고 있었다. 무릎, 정확히는 슬관절에 관한 항목만 놓고 보면 분량은 한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한 페이지를 네 번 읽는 동안 세 번은 다른 문장에 밑줄이 그였다.

문제는 그 표에 적힌 것이 ‘아프다’가 아니라 ‘몇 도’라는 데 있었다.

밤늦은 사무실 책상, 스탠드 불빛 아래 펼쳐진 법령 자료와 표, 30대 초반의 한국 남성이 정장 차림에 금테 안경을 쓰고 자료를 들여다보는 뒷모습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한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통보서 두 장의 온도차

의뢰인을 처음 만난 건 그보다 다섯 주 전이었다. 전화로 상담을 신청하신 분이 화요일 오후에 오셨고, 만나기 전에 이미 두 장의 문서를 이메일로 보내둔 상태였다. 검토는 절반쯤 끝나 있었다.

문서 두 장은 발신처가 같았고 날짜는 두 달 차이가 났다.

첫 장은 보훈심사위원회의 요건 심의 결과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신청인의 상이는 군 복무 중 교육훈련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어, 공상군경 요건에 해당한다. 그분은 이 종이를 받은 날 가족 단체 대화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고 했다. 스무 해가 걸려 받은 문장이었다.

두 번째 장은 신체검사 결과 통보였다. 문장은 훨씬 짧았다. 상이등급 기준에 미달하여 등급을 판정하지 아니함.

그분은 처음에 이 두 장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인정한다고 해놓고 등급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등급이 없으면 무엇이 없어지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보상금, 의료지원, 취득세 감면, 자녀 학자금 관련 지원 같은 것들이 대부분 등급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두 번째 통보서를 받고 보훈지청에 전화를 걸고 나서야 알았다.

행정에서는 인정과 평가가 다른 문을 쓴다. 그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게차와 두 아이

인물 이야기를 잠깐 해야 흐름이 이해된다.

의뢰인은 마흔 중반의 남성이다. 스무 해쯤 전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고, 복무 중 야간 훈련에서 무릎을 크게 다쳤다. 국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그 뒤로 계급이 오르는 동안 통증을 안고 지냈다. 전역 후에도 병원을 다녔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사는 쪽을 택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몇 해 전 상태가 나빠져 인공관절 부분치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통증은 확실히 줄었다. 대신 무릎이 접히는 각도가 줄었고, 오래 서 있으면 다리 전체에 힘이 빠진다.

현재 직업은 물류센터 지게차 기사다. 앉아서 하는 일이라 버틸 만하다고 했지만, 하차 작업 때는 내려서 걸어야 하고 그때가 문제였다. 회사는 이미 한 차례 그를 야간 하차조에서 주간 입고조로 옮겨 준 적이 있다.

집에는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두 아이가 있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비용은 형과 나눠 부담한다. 그분이 등록 신청을 뒤늦게 결심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스무 해 동안 안 하던 신청을 왜 지금 하느냐고 물었더니, 큰애가 3년 뒤에 대학에 간다고 답했다.

이 답이 사건의 시간표를 설명해 준다. 그분에게 이건 명예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돈의 문제였고, 두 개가 같은 서류 위에 얹혀 있었다.

혼자 낸 진단서 한 장

그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우리 사무실에 온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두 번째 통보서를 받고 보훈지청에 전화를 걸었을 때, 담당자는 정확한 안내를 했다. 결과에 이의가 있으면 재심 신체검사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 신청 방법을 받아 적었고, 다니던 정형외과에 가서 진단서를 한 장 더 발급받았다. 진단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좌측 슬관절 인공관절 부분치환술 후 상태, 만성 동통 및 보행 장애 있음, 지속적 치료 요함.

그 진단서 한 장을 첨부해서 재심을 신청했고, 결과는 같았다. 등급 기준 미달.

그분은 이 대목에서 화가 났다고 했다. 아프다고 의사가 써 줬는데 왜 안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해할 만한 반응이다. 그리고 이 반응이 정확히 첫 번째 실패의 원인이기도 했다.

두 번째 재심을 준비하러 오신 것이 우리와의 시작이었다. 첫 관문은 늘 같다. 기간이 남아 있는지부터 본다. 다행히 여유가 있었다.

요건과 등급은 다른 문을 쓴다

첫 상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쓴 건 서류 검토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는 일이었다.

그분이 두 번째로 준비해 온 자료 뭉치를 보니, 대부분이 스무 해 전 이야기였다. 훈련 당시 상황을 정리한 진술서, 같은 소대 동료의 연락처, 국군병원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자료를 어디서 떼야 하는지 알아본 메모.

그 자료들은 훌륭했다. 다만 이미 끝난 싸움의 자료였다.

요건은 이미 인정되어 있었다. 국가가 이 부상이 군 복무 때문이라는 것을 문서로 확인해 준 상태다. 그런데 그분은 그 문장을 한 번 더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 심사에서 다투는 지점이 어디인지가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그 하위 법령은 요건 해당 여부와 상이등급 판정을 서로 다른 절차로 두고 있다. 요건은 과거의 인과관계를 본다. 등급은 현재의 신체 상태를 본다. 앞의 문을 통과했다고 뒤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준비할 자료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야 했다. 스무 해 전이 아니라 지금 이 무릎이 어떤 상태인지, 그것을 등급표가 쓰는 언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정확한 조문·해석은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 또는 관할 기관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그 자리에서 말씀드렸다. 우리가 표를 읽는 방식과 심사에서 적용되는 방식이 늘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진단서가 말하지 않은 것

그분이 낸 진단서를 다시 읽었다. 세 번째 읽었을 때 문제가 보였다.

그 진단서에는 수치가 하나도 없었다.

만성 동통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통증은 등급표의 항목이 아니다. 보행 장애가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지가 없었다. 인공관절 부분치환술 후 상태라고는 적혀 있는데, 어느 쪽 관절에 어떤 삽입물이 들어갔고 남은 기능이 얼마인지가 없었다.

등급표는 각도와 등급으로 되어 있다. 관절이 몇 도까지 굽는지, 몇 도까지 펴지는지, 근력이 어느 단계인지, 관절이 인공물로 대체되었는지. 진단서가 그 언어로 쓰이지 않으면 심사하는 쪽에서는 판단 근거가 없다.

이건 진단서를 써 준 의사의 잘못이 아니다. 정형외과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지 보훈 등급표를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다. 환자가 ‘아프다는 걸 증명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아프다고 써 준다.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진단서는 치료용 문서로 남는다.

그래서 우리가 한 첫 번째 일은 이랬다. 등급표에서 슬관절 관련 항목을 뽑아, 판정에 실제로 쓰이는 표현들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관절 운동가능영역의 굴곡·신전 각도, 도수근력검사 등급, 인공관절 치환 부위와 범위, 하지 단축 여부, 보행 시 관찰되는 이상. 그 목록을 들고 주치의 진료에 동행할 수는 없으니, 대신 한 장짜리 요청서를 만들어 그분 손에 들려 보냈다.

요청서에는 이렇게 썼다. 아래 항목들은 국가보훈 상이등급 판정에서 실제 평가 기준으로 사용되는 항목입니다. 해당 여부와 관계없이 측정값을 기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없는 소견을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라, 있는 소견을 빠짐없이 적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닷새 뒤 새 진단서가 왔다. 굴곡 각도가 적혀 있었다. 반대쪽 무릎과의 차이도 함께 적혀 있었다. 근력 등급도 있었다.

같은 무릎인데 문서가 달라졌다.

열한 줄짜리 요청서

그 닷새 사이에 있었던 일은 조금 더 적어 둘 만하다.

요청서는 열한 줄이었다. 각 줄은 항목 이름과 괄호 안의 짧은 설명으로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슬관절 굴곡 각도(측정값을 도 단위로, 좌우 각각). 도수근력검사 등급(대퇴사두근 및 슬괵근). 인공관절 치환 부위 및 범위(전치환·부분치환 구분, 삽입 부위 명시).

그분은 이 종이를 들고 진료 예약일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그날 진료가 십 분짜리였고, 뒤에 대기 환자가 여섯 명이었다고 했다. 종이를 꺼내긴 했는데 의사가 먼저 “이건 무슨 서류냐”고 물었고, 설명하다 보니 시간이 다 갔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조정을 했다. 요청서 맨 위에 두 문장을 추가했다. 이 요청은 보훈 상이등급 판정을 위한 것이며, 소견을 새로 형성해 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소견을 지정된 항목으로 기재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측정에 별도 시간이 필요하시면 진료 예약 시 그 취지를 미리 접수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예약을 다시 잡되, 접수할 때 진단서 발급 목적임을 미리 말씀드리라고 했다. 병원 접수 단계에서 목적을 밝히면 진료 시간이 그에 맞춰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무릎을 실제로 측정했다. 각도기를 대고 재는 데 몇 분이 걸렸다고 한다. 스무 해 동안 그 무릎으로 살았지만 각도를 재 본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행정 서류는 대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없던 사실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있던 사실이 처음으로 측정된다.

물류창고에서 지게차 옆에 서서 무릎에 손을 얹고 잠시 멈춰 선 20~30대의 한국인 남성 작업자

없는 기록을 찾는 방법

두 번째 문제는 시간이었다.

등급 심사는 현재 상태를 보지만, 현재 상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가 흐릿하면 평가가 인색해진다. 스무 해 전 부상과 몇 해 전 수술 사이에 기록이 비어 있으면, 그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분은 그 사이의 기록이 거의 없었다. 전역 직후 다닌 동네 정형외과는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그다음에 다닌 한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국군병원 수술 기록은 요청 절차를 밟아야 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디까지 남아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여기서 방향을 하나 틀었다. 병원 기록을 병원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급하는 요양급여 진료내역이 있다. 언제, 어느 과에, 어떤 상병 코드로 진료를 받았는지가 연도별로 남는다. 병원이 사라져도 이 기록은 남는다. 그분에게 본인 진료내역을 최대한 긴 기간으로 신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 뒤 받아 본 내역에는 전역 이듬해부터 슬관절 관련 상병으로 정형외과 진료가 반복된 흔적이 있었다. 연속적이지는 않았다. 몇 년 비었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충분했다. 비어 있는 몇 해는 오히려 그분의 진술과 맞아떨어졌다. 참다가 못 참으면 갔고, 견딜 만하면 안 갔다.

그 내역을 연도별로 정리해 한 장짜리 표로 만들었다. 왼쪽에 연도, 가운데에 진료과와 상병, 오른쪽에 그해 그분의 직업 변화. 부상이 삶을 어떻게 눌러 왔는지가 한 장에 보이도록 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붙였다. 회사에서 받은 배치 전환 기록이다. 야간 하차조에서 주간 입고조로 옮긴 인사 기록과 그 사유란. 진단서가 말하는 기능 제한이 실제 노동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였다. 의학적 소견과 생활상의 제한이 서로를 받쳐 주면 판단은 훨씬 안정된다.

삼 주를 기다린 회신

국군병원 수술 기록은 가장 오래 걸린 자료였다.

스무 해 전 그분이 수술을 받은 병원은 지금 그 이름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부대 개편 과정에서 통합되었고, 기록이 어디로 이관되었는지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분은 이 단계에서 이미 한 번 포기한 적이 있었다.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할지 몰라 몇 군데를 돌다가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의무기록 사본 발급은 본인 또는 본인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신청한다. 절차 자체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그 절차를 어디에 대고 밟느냐를 아는 일이다.

첫 회신은 애매했다. 해당 기간 기록의 보존 여부를 확인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회신을 받으면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일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하나 있다. 회신 자체를 남겨 두는 것이다. 요청한 날짜와 회신 날짜를 기록해 두면, 나중에 자료가 끝내 없더라도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자료가 없는 것과 찾지 않은 것은 심사에서 다르게 읽힌다.

삼 주째에 사본이 왔다. 수술기록지가 남아 있었다. 그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손글씨로 적혀 있었고, 판독하기 어려운 부분이 몇 군데 있었지만 핵심은 읽혔다.

여기에 인공관절 수술을 한 민간 병원에서 삽입물 확인서를 받아 붙였다. 어떤 제품이 어느 부위에 들어갔는지가 명시된 서류다. 이 서류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등급표는 인공관절 치환 여부를 별도로 다루는 구조를 갖고 있는데, 진단서 한 줄로는 그 사실이 충분히 특정되지 않는다.

그분은 이 서류 뭉치를 받아 보고 “이걸 다 냈어야 하는 거였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다 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느 단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가 안내문 한 장에 다 적혀 있지도 않다. 그 사이를 메우는 일이 실무다.

빼야 할 자료도 있었다

자료를 모으는 것만이 일은 아니다. 이번 건에서는 빼는 판단이 하나 있었다.

그분은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무릎 때문에 걸음이 틀어지면서 요추에 부담이 갔다는 것이 본인의 설명이었고, 실제로 요추 진료 기록도 있었다. 그분은 이 자료를 함께 내고 싶어 했다.

내지 않기로 했다.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드렸다.

첫째, 요건 인정의 범위는 슬관절 상이에 한정되어 있었다. 요건이 인정되지 않은 부위를 등급 평가에 얹으면, 심사하는 쪽에서는 우선 그 부위를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판단부터 하게 된다. 우리가 실제로 다투려는 지점에서 시선이 분산된다.

둘째, 요추 증상이 무릎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별도의 인과관계 입증이 필요한 문제다. 그걸 이번 재심에 끼워 넣으면 준비되지 않은 싸움을 하나 더 여는 셈이 된다.

대신 그 자료는 버리지 않고 따로 묶어 두었다. 필요하면 다음 단계에서 별도로 다룰 여지를 남겼다. 지금 안 쓰는 것과 영영 안 쓰는 것은 다르다.

이런 판단이 실무에서는 자료를 하나 더 찾는 일보다 결과에 크게 작용할 때가 있다. 무엇을 넣을지보다 무엇을 이번에 넣지 않을지가 어려운 결정이다.

재심이냐, 심판이냐

경로 선택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 미달 통보를 받았으니 행정심판을 바로 청구하는 길도 있었다. 「행정심판법」 제27조는 처분이 있음을 알게 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청구하도록 정하고 있다. 날짜를 역산해 보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분은 이 길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같은 곳에 또 신청해 봐야 결과가 같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심정은 이해가 갔지만, 재심 신체검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드렸다.

첫째, 상이등급은 성격상 의학적 사실 판단에 가깝다. 각도와 근력과 삽입물이라는 구체적 측정값이 판정의 뼈대를 이룬다. 이런 영역에서는 심판을 담당하는 기관도 전문 심사기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측정 자료 없이 서면으로만 다투면, 다툼의 재료 자체가 부족하다.

둘째, 이번에 우리가 만든 자료들은 아직 심사에 제출된 적이 없는 자료다. 처음 두 번의 판정은 수치 없는 진단서 한 장을 근거로 나온 것이었다. 새로운 근거가 들어가면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실제로 있다. 같은 자료로 같은 결론이 나온 게 아니라, 다른 자료가 들어간 적이 없었을 뿐이다.

셋째, 순서의 문제다. 자료를 갖춘 상태에서 재심을 거치면, 만에 하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다음 단계로 가더라도 그때는 훨씬 두툼한 기록을 들고 갈 수 있다. 반대로 자료 없이 심판부터 갔다가 기각되면, 그 결과가 이후 판단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행정에서는 순서가 절반이다. 어떤 도구를 쓰느냐보다 어떤 순서로 꺼내느냐가 결과를 가르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분은 하루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다음 날 아침에 전화가 왔다.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청구서에 담은 네 가지

재심 신청 서류를 만들면서 정리한 축은 네 가지였다. 많이 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순서대로 따라올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첫째는 종전 판정의 근거가 된 자료가 무엇이었는지를 짚는 부분이다. 종전 판정을 비난하는 서술은 넣지 않았다. 대신 사실만 적었다. 앞선 두 차례의 판정 당시 제출된 의학적 자료는 관절 운동가능영역·근력 등급·치환 범위에 관한 측정값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판정을 다투는 게 아니라 판정의 재료가 부족했다는 이야기였다. 처분청이나 심사기관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재검토의 여지를 여는 방식이다.

둘째는 새로 확보한 측정값이다. 좌우 무릎의 굴곡 각도 차이, 근력 등급, 보행 시 관찰되는 이상을 진단서 원문 그대로 인용했다. 우리가 해석을 덧붙이지 않았다. 해석은 심사하는 쪽의 몫이고, 우리가 앞서 나가면 오히려 신뢰를 잃는다.

셋째는 인공관절 부분치환 사실의 특정이다. 수술기록지와 삽입물 확인서를 근거로, 어느 부위가 인공물로 대체되었는지를 명시했다. 등급표가 이 사실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심사에서 판단할 문제이므로, 우리는 사실만 올려놓고 판단 요청만 적었다.

넷째는 생활상의 제한이다. 요양급여 진료내역 표, 회사 배치 전환 기록, 그리고 그분이 직접 쓴 하루 일과 기록을 붙였다. 마지막 것은 A4 한 장짜리였다. 몇 시에 일어나 어떻게 출근하고, 하차 작업이 있는 날과 없는 날이 어떻게 다른지가 담담하게 적혀 있었다. 감정적인 문장은 빼자고 했고, 그분도 동의했다. 호소하는 글보다 기록하는 글이 힘이 세다.

서류를 다 묶으니 예상보다 두꺼워졌다. 목차를 앞에 붙이고, 각 자료가 위 네 축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표시했다. 두꺼운 서류는 그 자체로 부담을 주기 때문에, 어디를 보면 되는지를 알려 주는 한 장이 필요하다.

상담 테이블 위에 펼쳐진 의료 기록과 검사 자료를 함께 들여다보는 두 사람

검사장으로 보내기 전에

재심 신체검사 날짜가 잡히고 나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 있다.

신체검사에서 측정되는 항목들을 그분에게 미리 설명해 드렸다. 이건 요령을 알려 주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첫 검사 때 그분은 무릎을 최대한 굽혀 보라는 말에 이를 악물고 평소보다 더 굽혔다고 했다. 잘 보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반대로 행동한다. 특히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반응이다.

측정은 평소 상태를 재는 것이지 최대 노력치를 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렸다. 무리해서 만든 각도는 그날 하루의 숫자이지 그분의 일상이 아니다. 통증이 나타나는 지점에서 멈추고 그 사실을 말하는 게 정확한 측정이다.

준비한 서류는 사본을 한 부 더 만들어 그분이 직접 들고 가시게 했다. 우편으로 미리 낸 자료가 검사 당일 담당자 손에 있으리라는 보장이 늘 있는 건 아니다. 두 번 내는 건 번거롭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검사 전날 저녁 전화를 드렸다.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스무 해를 기다린 사람이 하루를 더 기다리는 밤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3층 복도

검사 당일 이야기는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분은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고 한다. 대기실에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도 있었고 훨씬 나이 든 분들도 있었다. 다들 서류 봉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는 게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측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가지 동작을 하고, 각도를 재고, 힘을 주어 보라는 지시를 따랐다. 굽히는 동작에서 통증이 오는 지점이 있었고, 이번에는 그 지점에서 멈추고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첫 검사 때와 다른 건 그것뿐이었다.

들고 간 서류 사본은 실제로 쓰였다. 앞서 우편으로 보낸 자료가 도착해 있었지만,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부를 더 참고했다고 한다. 번거로운 준비가 가끔 이렇게 값을 한다.

돌아오는 길에 그분이 전화를 하셨다. 별 이야기는 없었다. 끝났다는 말과, 다음은 언제쯤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정확한 기간은 사안마다 다르고 심의 일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답을 드리는 게 늘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확실하지 않은 날짜를 말하는 것보다는 낫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한 일은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 정도였다. 등록 절차는 신체검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과 통보 이후에도 범죄경력 조회 같은 확인 단계가 남아 있고, 그 단계에서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분에게 이 점을 미리 말씀드렸다. 결과가 나온 뒤에 또 기다리게 되면, 뭔가 잘못된 줄 알고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7급

결과 통보는 검사일로부터 몇 주 뒤에 왔다.

상이등급 7급.

그분이 기대한 등급은 아니었다. 상담 중에 몇 번인가 6급 이야기를 꺼내셨고, 나는 그때마다 등급을 예상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요건 인정 여부도, 등급도, 판단하는 곳은 따로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판단에 필요한 재료를 빠짐없이 올려놓는 일까지다.

그래도 7급은 등급이 없는 상태와는 다른 자리다. 등급이 판정되면서 등록이 마무리되었고, 보상금 지급 대상이 되었다. 보훈 의료 지원 체계 안에 들어갔다. 자동차 취득세 감면 대상 범위에 포함되는 등급이기도 하다. 다만 감면에는 대체취득 시 종전 차량 처리 기한 같은 조건이 붙으므로, 실제 적용 여부는 반드시 관할 기관에 확인하시라고 따로 안내드렸다. 조건을 놓쳐 감면이 취소되는 사례를 여러 번 봤다.

2026년 보훈급여금이 인상되면서 저등급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조정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다만 구체적인 금액과 적용 시점은 공식 고시로 확인해야 한다. 이런 숫자는 상담 자리에서 단정해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통보서를 받은 날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담담했다. 큰애 등록금 이야기를 다시 하셨고, 어머니 요양원 비용 이야기를 하셨다. 그 두 가지가 이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내용이었다.

비슷한 전화들

이 사건 이후로 같은 결의 문의를 몇 차례 더 받았다. 유형이 몇 가지로 나뉜다.

가장 많은 것이 이번 사례와 같은 경우다. 요건 인정 통보를 받고 등록이 끝난 줄 알았다가, 등급 미달 통보를 받고 나서야 두 절차가 별개라는 걸 아는 경우다. 이때 대개 이미 한두 번 혼자 시도해 본 뒤다. 그리고 그 시도가 대부분 요건을 다시 증명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는 군인연금을 받고 있어서 신청 자격이 없는 줄 알았다는 경우다. 연금과 보훈 보상은 제도의 뿌리가 다르다. 함께 받을 수 있는지, 조정이 있는지는 사안에 따라 다르므로 단정할 수 없지만, 아예 못 받는 것으로 알고 신청조차 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확인해 보고 안 되는 것과 확인하지 않아서 못 하는 것은 다르다.

세 번째는 유족 쪽이다. 본인이 살아 계실 때 신청하지 않았고, 돌아가신 뒤에 남은 가족이 알아보기 시작하는 경우다. 이때는 자료 확보가 훨씬 어렵다. 본인 진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유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진다.

네 번째는 등급을 받고 등록까지 마쳤지만, 시간이 흘러 상태가 악화된 경우다. 이때 재판정 신청이라는 경로가 따로 있다. 등록이 끝나면 모든 게 확정된 것으로 아는 분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이런 유형들을 여기 적어 두는 이유는 하나다. 각각의 경우에 밟아야 할 길이 다른데, 안내문만 읽어서는 내가 어느 유형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아는 것이 첫 단계다.

그 뒤의 이야기

전체를 다시 보면, 이 사건에서 바뀐 사실은 하나도 없다.

무릎은 스무 해 전부터 같은 상태였다. 수술도 몇 해 전에 이미 받았다. 진료 기록도 원래 있던 것이고, 회사의 배치 전환도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가 새로 만든 사실은 없다.

바뀐 건 그 사실들이 문서로 옮겨진 방식이다. 아프다는 말이 각도로 바뀌었고, 견뎠다는 세월이 연도별 진료 내역으로 바뀌었고,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인사 기록으로 바뀌었다. 심사하는 쪽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옮긴 것뿐이다.

그분이 처음 두 번 실패한 이유도 이제 보면 단순하다. 국가가 이미 인정해 준 것을 한 번 더 증명하려 했고, 정작 평가받아야 할 것은 증명되지 않은 채로 두었다. 억울한 일이었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요건과 등급이 서로 다른 문이라는 걸, 그 문을 통과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알 도리가 없다.

행정 절차는 종종 사람의 삶을 몇 달, 몇 년씩 유예시킨다. 스무 해를 미룬 신청이 다시 반년을 도는 동안, 그분은 계속 지게차에 올랐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되찾는 일이 저희 사무소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 통화에서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아이한테 아빠가 어디서 다쳤는지 설명할 수 있겠다고. 등급표에는 그 문장을 적을 칸이 없다.

비슷한 상황이 궁금하시면 편하게 문의 남겨 주세요.

이른 아침 창가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 책상 위에 놓인 서류 한 장과 식어가는 커피잔, 사람 없이 고요한 실내

인천 송도(포스코타워송도)에 자리한 행정사사무소입니다. 행정심판·인허가/신고 대행, 외국인 출입국(비자·체류), 정기 행정관리를 다룹니다. 국가유공자 등록과 상이등급 신체검사처럼 요건과 평가가 나뉘어 있는 절차에서는,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다투어야 하는지를 먼저 잡는 일이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비슷한 상황이 있으시면 부담 없이 문의 남겨 주세요.

━━━━━━━━━━ 황윤상 행정사사무소 📍 인천 연수구 컨벤시아대로 165, 포스코타워송도 2697호 📞 010-3374-2687 🌐 www.hwangadm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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